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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Ⅰ. 서론 1. 팝 아트가 왜 정치적인가 2. '정치'란 무엇인가 협의의 정치와 광의의 정치 Ⅱ. 본론 1. 국가, 종교 차원에서 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사례(협의의 정치의 의미에서) 2. 민중 예술 3. 페미니즘 예술 4. 인종 문제와 관련된 예술 Ⅲ. 결론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본문 남성은 여성을 남성을 파멸시키는 존재로 보지만, 여성의 작품에서는 같은 주제도 조금 다른 시각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프란츠 폰 슈툭(Franz von Stuck),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I>, 1927과 여성화가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를 보면 조금 더 쉽게 구분이 될 수 있다. 프란츠 폰 슈툭의 그림을 보면 유디트는 남성을 유혹하여 죽음으로 이끄는 팜므파탈의 유형으로 그려져 있다. 전후 맥락이 없이도, 이 화가의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그림 하나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보면 유디트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고 있다. "나는 너를 죽여야만 한다"는 강인한 모습이다. 여성을 이렇게 자기 주체적으로 그린 몇 안 되는 여성화가로서, 1800년대의 젠틸레스키는 혁신적이다. 오히려 그녀의 그림에서 왠지 모를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주디 시카고의 <출산의 눈물/찢다>라는 작품과 톰 웨셀만의 < Helen> 를 비교 해본다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둘 다 같은 누드이지만, 주디 시카고는 출산하는 여성을 표현하며 '찢는' 고통이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톰 웨셀만의 팝 아트 작품은 남성의 입장에서, 누드 여성을 그저 성적인 존재로만 나타냈다. 다른 부분의 색채를 배제하며, 성행위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만을 중요하게 나타냈다. 시인 김선우의 <얼레지> 에서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헤어졌던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자위를 하느냐' 혹은 '누구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느냐'하며 묻는다. 대답하는 여성은 당차게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 자위를 한다.'라고 이야기 한다. 여성의 입에서 표현되는 '자위'라는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단어, 그리고 누군가를 생각해야만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무욕의 존재로 여성을 인식하는 전 남자친구, 그런 남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성 역시 욕망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당당한 여성.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는 자위의 행위는 남녀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자위는 남성의 것, 남성이 하면 괜찮은 것, 혹은 남성의 사춘기에 모두 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자위를 수면으로 이끌어 낸다는 것 보다는, 여성 역시도 남성과 같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성을 뺀 나머지의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성이 존재한다면, 현재까지 남성의 스코어가 여성보다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를 많이 가진 남성이 우 키워드 예술철학, 정치적, 예술, 의미, 철학 |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예술철학 예술에 있어서의 정치적 의미
예술철학 예술에 있어서의 정치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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